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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크랙 불멸의 피부                                                                                               

정주원
 

 

지난 개인전 《 목젖까지 던지세요 사랑에 》 에서 나는 사랑에 대한 아교 템페라 회화 작업들을 전
시했다 그러나 전시 중 유난히도 많이 받은 질 문 은 작품의 재료와 표면의 크랙에 대한 것 들 이 었
다 그놈의 ‘아교 템페라’가 도대체 무엇인지와 작품 표면의 이 크랙은 주변으로 더 퍼지는지 아
니면 이대로 유지되는지 크랙은 왜 생기는지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이 질문들은 나에게 내 재료
가 가진 한계를 똑똑히 보라고 이야 기 하는 듯 했고 작업의 가치를 위협받는 기분까지 들게 했다
어쩌면 그림으로 먹고 사는 꿈 같은 일 이 크랙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미래의 생계를 위협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하루 빨리 이 크랙들을 해결해야겠다는 결심
으로 이어졌다.


작품의 잠재적 구매자에게도 , 나에게도 크랙은 결함이자 흠집이었다 일부러 크랙을 만드는 크랙
클링 페이스트도 있는 이 좋은 세상에서 크랙이 왜 결함이자 공포로 느껴질까 모든 공포는 불안
과 불확실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사자보다 어두운 수풀이 더 두려운 이유는 그 수풀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크랙이 두려운 이유는 이 크랙의 미래에 대한 확실성이 없기 때문일 것
이다 반면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크랙이라면 두렵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안전하게 보존되고 유지되는 ’ 크랙을 만들고자 했다 아주아주 연약하지만 아주아주 오랫동안 보
존되는 , 부서질 것 같지만 절대 부서지지 않는 불멸의 크랙 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말처럼 쉽지 는 않았다 의도적으로 만든 크랙 이라고 해서 그 고의성이 미래의 안전성 까
지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업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불안해보이는 크랙은 즉시 사포질 당해
없어졌고 그 크랙이 없어 지고 흔적만이 남은 화면에서 잠시 나마 평온함을 느꼈다 그러나 금세
불멸의 크랙 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은 평온한 화면에 다시 불안감을 느끼며 크랙을 만들기 위
해 물감 의 레 이 어 를 쌓았다 이 일련의 과정을 5~6 번 반복하다 보면 각각의 그림은 크랙이 없어
진 흔적과 없어지지 않는 불안하고 강렬한 크랙 그 사이 어디쯤의 위치에 각자의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덮인 표면 아래에 는 그 실패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층위들이 조용히 쌓였다.

 

그림 속에서 크랙과 나는 불안이라는 키워드로 한 몸처럼 동일시 되었다가도 서로를 향해 물총을
겨누며 누군가는 이겨야 끝나는 무한한 싸움을 벌인다 새로운 피부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스
스로를 먹어 치우는 뱀 우로보로스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원 을 그 린 다 손전등을 들고 혹
시 있을지도 모를 크랙을 색출해내고 미끄러짐을 연습하는 언덕이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실패를
연습 하고 토하는 구름이 만들어내는 푹신한 층위를 안전망 삼아서 추락을 연습한다.

 

《불멸의 크랙 》 전시를 준비하는 일 은 작업 의 새로운 피부를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물고기를 키우는데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들 끼리는 '우리는 물고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물을 키우는 거다. 물이 잘 관리되면 물고기는 알아서 잘 산다.'는 농담을 주고 받는다. 이처럼 지금 시점에서 내가 한 것 은 물고기가 아닌 물을 키우는 일, 앞으로 계속 가져갈 작업의 표면을 정비하는 일이었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불멸”과 “크랙”은 애당초 함께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죽지 않는 새는 없지만 불사조는 있는 것처럼, 불멸의 크랙은 없지만 불멸의 피부는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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