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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had two solo exhibitions under the title "Sorry, mom. I do art." in 2017 and 2018. As a painter, a daughter of someone, and a youngster, there are times when I feel it is a burden itself for doing art and living in art. It can be quite exhausting to continue this act of doing art and prove oneself as an artist regardless of financial and economic conditions that surround me. 

   The artwork "Sorry, mom. I do art" can be seen as a labor but that is not considered as a labor, which started with the act of art, doing the art itself. Working with the" 탈: " series, I chose to prove the performance of my work and also to eliminate my anxiety. I have set the goals to finish the work of size 10 a day and drew every day like I go to the school and check my attendance. Also at the same time, I was questioning myself as an artist, if I could continue this life and that I will continue to do this work as an artist. 

   Before the "Sorry, mom. I do art" exhibition, I have been collecting images that we encountered in everyday life or rearranged the images to create a narrative. 
The collected image pieces could be a fragment of the blurred past, a consideration of the act of painting itself, or a landscape that could be seen on the street yesterday. The pieces of images that seem less relevant were named "Big Tents of Fragmented Images" series. The "Big Tents" that somewhat implies a community that was created by the needs and demands of politicians. And the collected images that form a loose community. Images that exist in each of the small paintings are a narrative in large work such as "The Story of Stories", a tail which is tied to the tail. Images in which that come out in different contexts and mumbling words are also rearranged on the screen. It is to be seen that the objects in the display can be scattered always, as well as the components of the work, and also can be grouped together. Some images are repeated in the context of other images in a different meaning. Also, the work can be interpreted that it is always accompanied by the fear that the internal narrative will not be understood by universal standards, and could be seen as a meaningless thought for the others. However, if an individual's own narrative stand firm and solid, it is likely to happen that there might be a place to interact with outside world.

나는 2017년과 2018년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의 개인전을 했다. 


작가로서, 누군가의 딸로서, 한 시대의 청년으로서 ‘미술을 계속 한다. 그림을 계속 그려나간다.’라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나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서라도 스스로의 존재를 계속 증명해나가고 보여주고 평가되며 선별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지치기도 한다.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라는 일종의 사과는 사실 엄연한 노동이지만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 미술행위 자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탈-불안 릴레이>시리즈 작업에서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나의 성실한 노동의 성과를 증명해내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루의 한 개의 10호 크기의 작업을 완성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출석체크처럼 매일매일 그림을 그렸다. 작업을 노동으로 치환하는 이 시리즈 작업을 통해서 나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조적인 질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시킬 것이라는 의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엄마, 미술해서 미안해> 전시 이전에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미지들을 수집하거나, 수집한 이미지들을 재배열해서 일종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작업들을 했다. 수집된 이미지의 조각은 흐릿한 과거의 단편적인 잔상일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고민일 수도, 혹은 어저께 길에서 보았던 풍경일 수도 있다. 연관성이 적어보이는 그 이미지들의 파편들을 <잔상들의 빅텐트>시리즈라고 이름 붙였다. 정치권에서 필요에 따라 모인 일시적인 공동체를 부르는 말인 빅텐트처럼 수집된 이미지들 또한 느슨한 공동체를 이룬다. 작은 그림들에서 각자 존재했던 이미지들은 <이야기들에 대한 이야기> 와 같은 큰 회화작업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서사를 이룬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이미지들, 그리고 다소 자조적인 혹은 독백하듯이 중얼거리는 말들이 화면 안에서 재배열된다. 진열장에 있는 물건들이 언제나 흩어질 수 있듯이, 작업 속의 구성요소들은 흩어지기도 하고, 따로 있다가 또 뭉치기도 한다. 어떤 그림의 이미지는 다른 그림에서는 다른 맥락에서 반복되기도 한다. 내밀한 서사는 보편적인 잣대로는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타인에게는 무의미하게 다가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항상 동반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서사가 단단해지면 분명 바깥의 서사와도 맞닿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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